환경에세이 2 - 환경교육이 다른 영역과 먼저 손잡을 수 있기를...

환경교육이 다른 영역과 먼저 손잡을 수 있기를...


 

송헌석/(사)환경교육센터 회원

교보생명 교육문화재단 과장

 

저는 교보생명교육문화재단에서 근무를 하고 있으며 환경 관련된 업무를 주로 맡고 있습니다. 재단에서 1년에 평균 300개 정도의 환경교육관련 계획서를 보는 것 같습니다. 대부분이 매년 연초에 진행하는 환경교육 공모사업에 신청한 기획서 입니다. 재단의 지원사업 덕분에 환경관련 단체에서 며칠 때론 몇 달을 고민하고 준비한 기획서를 읽어볼 수 있는 호사를 누립니다. 덕분에 기획서를 보면서 지역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기도 하고, 단체의 상황이 어떠한지, 지금 환경교육 영역에서 어떤 고민을 하고 있으며, 어떤 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도 파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현장에서 몸으로 부딪히며, 치열하게 고민하고 실천하지 않으면서 책상머리에 앉아 세상의 모든 일을 다 아는 듯 자만에 빠지는 우를 범하는건 아닌가 염려되곤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사실 이런 원고를 쓸 때 특히 조심스럽습니다.


먼저 드리고 싶은 말씀은, 환경교육 현장에서 활동하는 모든 분들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교육이 사회의 의식을 바꾸는 가장 효과적이며, 실질적이고 빠른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만물의 영장이라는 자기오만에 갇혀 지구의 모든 생명체를 인간의 욕망을 위한 도구로 전락시킨 지금의 사회에서, 인간이 세상의 중심이 아닌 모든 생명들과 더불어 살아가야하는 존재임을 가르치는 환경교육은 그 어느 교육 중에서도 가장 급진적인 교육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러하기에 환경교육의 가치와 역할에 대해 사회적으로 새로운 조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환경교육 현장에 있는 모두가 무한한 자긍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환경교육이 조금 더 발전하기 위해서, 환경교육 영역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창조적 파괴’가 아닐까 합니다. 이는 단순히 기존의 모든 것을 새롭게 요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최근 우리사회에 ‘통섭’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졌었는데, 창조적 파괴를 달리 말하면 ‘통섭’이 아닐까 합니다. 환경교육은 ‘열린’ 교육입니다. ‘열려져 있음’은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다름’이 인정되는 개방성과 포용력을 포함한 것입니다. 또한 한편으로는 정형화된 틀이 없음을 의미하기도 하고, 정형이 없기 때문에 모든 것에 정형이 될 수 있기도 합니다. 이를 바꿔 말하면 환경교육은 모든 교육영역에서 가장 근저를 이루는 교육이란 의미도 되며, 또는 모든 교육 속에 기본적으로 포함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는 건 환경교육은 특정 영역 또는 특정분야만 한정되어서는 안 되며, 다양한 분야 다양한 영역과 함께하는 것이 더욱더 절실히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입니다. 환경문제는 인간이 자연을 착취하는데서 오는 문제이기도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면 인간과 인간 사이의 착취와 억압구조가 확대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지금의 지구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간과 자연의 올바른 관계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우선적으로는 인간과 인간사이의 관계를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며, 인간관계의 개선만으로도 지금의 환경문제를 일정정도 해결할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입니다.

혹자는 ‘이제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온 인류가 모든 노력을 해야 하지만,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시키는 방법, 변화되는 기후환경 속에서 살아남을 방법도 고민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는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노력과 아울러 사회적 약자의 환경권이란 부분도 충분히 고려되어야 한다는 말이며, 사회적 약자의 환경권을 위해서는 복지 분야와의 협력, 나아가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분야와의 협력도 함께 요청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분야와의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환경교육 측면에서의 접근이 아닐까 합니다.


환경교육은 사회의 다양한 영역에 먼저 손을 내밀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와 경제, 문화, 복지 등 사회의 다양한 영역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해 함께 손잡고 해결해 나가려고 할 때, 그러한 노력 속에서 ‘환경의 가치’가 좀 더 생동적이면서 실질적으로 전달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환경교육자들이 더욱 유연하고, 개방적인 사고를 가졌으면 합니다. 특히, 환경교육이 문화와 예술영역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함께 했으면 합니다. 문화와 예술에 대한 감수성은 환경에서 말하는 생태적 감수성과도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환경복지, 생태복지란 말을 종종 사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는데, 복지영역에도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