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에세이 - 내가 사는 동네

내가 사는 동네


김희경 l 환경교육센터 회원

환경교육연구모임 까치밥


맑은 가을 날, 오전 10시 30분. 아파트 단지 내 벤치에 아이 손을 잡고 나온 엄마들이 모였다. 모두 다섯 가족. 아이들 손에는 잠자리채가 들려 있었고, 엄마들은 돗자리, 간식이 들어있는 가방을 안고 있다.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10분쯤 걸으니 진한 초록빛의 논이 펼쳐졌다. 아이들은 달리기 시작했고, 벼 잎 위에 앉아 있던 잠자리들도 날개를 펴고 춤을 췄다. 아이들과 엄마들은 논에서 물방개, 잠자리 유충을 만났고, 바로 옆에 있는 개울에서 가재, 옆새우, 강도래를 관찰했다. 하늘은 키가 컸고, 햇살은 건강했으며, 사람들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내가 살고 있는 수원의 한 아파트 풍경이다. OO생협 조합원인 나는 이 아파트 단지에 조합원 모임이 있다는 말을 듣고, 모임에 처음 나가 보았다. 아이 키우면서 살림하는 엄마들이 중심이 되는 모임으로,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생협에 대한 의견을 모으고, 다양한 활동을 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눈다고 했다. 모이는 장소와 주제는 매번 바뀌는데, 이날의 활동은 ‘두꺼비논’으로 나들이 나가기였다. 두꺼비논은 생협 회원 몇몇이 아파트 근처에 있는 논을 공동으로 임대해서 농약을 뿌리지 않고 농사는 짓는 곳이다. 얻는 쌀의 양은 많지 않지만, 농약 없는 논은 인근에 사는 두꺼비들이 알을 낳고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된다. 물론 두꺼비 뿐 만 아니라 수많은 수생생물들이 건강하게 살아가는 터전이 된다. 아이들이 논에 들어가 보고, 생물을 만나고, 농사를 경험할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은 단지 무농약 쌀을 얻는 것보다 훨씬 값진 열매가 된다. 그 열매를 위해 사람들은 기꺼이 논을 빌리는 기금을 내놓는다.

생협 조합원이 중심이 돼 출발한 아나바다 장터도 있다. 6~7년 전 인근에 있는 생태교육 모임과 힘을 합쳐 아파트 단지 한 귀퉁이에서 조그맣게 시작한 행사다. 돗자리 서너개 깔아놓고 작아진 아이들 옷, 안 쓰는 학용품 등을 사고 팔았는데, 올해는 이 행사에 아파트 전체 입주자 대표회도 같이 참여한다고 한다. 장소도 아파트 중앙 분수대로 옮기고 규모도 훨씬 커졌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누구나 안 쓰는 물건을 내놓고, 또 필요한 물건을 사갈 수 있다. 수익금은 사회를 위한 일에 쓴다. 새로운 자원을 소비하지 않고, 폐기물을 줄이며, 무엇보다 참여하는 아이들에게 환경과 소비의 연결성을 생각하게 해 줄 수 있는 시간이다. 9월23일 행사 당일, 아파트 전체가 시끌벅적해지길 기대해 본다.

환경과 관련된 활동은 사회 전체의 변화를 추구하며, 지배적인 담론에 맞서고, 큰 규모에서 치밀한 전략을 세워야 하는 것이 있다. 그러나 동시에 자신의 주위에서 이웃과 힘을 합쳐 작은 변화를 일으키고, 직접 몸을 움직여 실질적인 생활을 바꾸는 길도 존재한다. 두 가지 길은 각 위치와 영역에서 담당해야 할 역할이 있지만, 그 중 더 단단하고, 더 실천적이며, 그래서 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은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활동이 아닐까 싶다. 생협의 조합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다른 모임과 연계해서 일을 계획하기도 하며, 먹을거리나 소비, 교육 등 생활과 직접 연결되는 동네 활동들. 이웃과 소통하며 즐거움을 기반으로 이뤄지고, 특별한 지향을 내세우지 않지만,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가치관 내에서 창의적인 활동을 이뤄내는 생활 속 실천들. 이들은 자발적이고, 생활 밀착적이며, 일상성과 지속성을 갖는 활동이라는 점에서 작지만 강한 힘을 갖는다. 또한 활동 안에서 학습이 일어나고, 사람이 변화를 얻고, 그 변화를 더 넓혀 간다는 점에서 그것은 교육, 특히 환경교육이 된다. 의도하지 않았고, 예상하지 못했지만, 우리 동네에서는 아주 중요한 환경교육이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우석훈이 쓴 책 중에 가 있다. 사회 변화는 시민 개개인의 변화를 통해서 서서히 이뤄진다는 의미를 갖는 제목이다. 환경 분야에서 혁명이 일어난다면, 그 역시도 환경 시민 한명 한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거치면서 조용히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우리 동네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일들 역시 그런 과정의 하나이지 않을까?

논에서 놀다가 간식을 먹으러 돗자리에 모여 앉았다. 다음 모임은 무엇을 할까, 어디서 모일까를 의논했다. 이야기 끝에 휴대용 물통을 담는 주머니를 만들기로 했다. 10월엔 우리집 거실에 사람들이 모여 주머니를 만들고, 이야기를 나누고, 음식을 나눠 먹을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 각자의 가치를 나누고, 지향점을 공유하게 될 것이다. 동네 사람들과 함께 나는 그렇게 살아있는 환경교육의 현장을 즐길 것이다.

 

                 두꺼비논으로 소풍가요~                                                잠자리 유충이 보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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