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여행기] 낯선 길 위에서 오래된 미래를 만나다(1)


 [교보 2008 대학환경상 수상집 부문 게재]





 


라오스 여행기 ; 낯선 길 위에서 오래된 미래를 만나다(1)


 


 


컵짜이 라이라이


  ‘데쿠이 밤(체코), 탁(덴마크), 끼토스(핀란드), 메르씨(프랑스), 그라찌(이탈리아), 컵짜이(라오스), 당케(독일), 아리가토(일본), 씨에씨에(중국), 탱큐(미국), 감사합니다(한국)...’ 국제화 시대, 우리는 점점 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만나고 다양한 문화와 언어를 알아가게 된다. 이번 여름 나는 아주 따뜻한 ‘컵짜이’라는 감사표현을 하나 더 배우게 되었다.


  올 여름, 10년의 활동을 잠시 접고 학업에 열중하기로 한 나는 8월을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이자 안식휴가로 여행길에 올랐다. 목적지는 친구 영란이 KOICA1)단원으로 2년째 자원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라오스(Laos)라는 나라의 작은 마을이다. NGO에 처음 발을 들여놓고 열정과 고민을 함께 나누던 동료이던 10년 지기 친구가 라오스에 자원봉사 단원으로 파견 간다는 이야기를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해도 라오스는 내게 미지의 세계였다. 오지로, 위험한 곳으로 가는 게 아닌가 싶어 내심 걱정되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의 타문화에 대한 편견과 무지가 부끄러운 순간이다. 그런데 라오스 여행을 준비하면서 접하게 된 정보들은 전혀 새로운 것이었다. 여행자들의 글에는 하나같이 이 ‘미지의 세계’에 대한 극찬을 아끼지 않고 있었다. ‘도시 자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뉴욕타임즈가 선정한 2008 꼭 가봐야 할 여행지 선정’, ‘최후의 에덴동산’, ‘욕망이 멈추는 곳’...!


  두려움이 기대감으로, 기대감이 설레임으로 바뀔 때쯤 기내에 몸을 실었다. 낯선 나라 라오스에서 만나게 될 사람들과 관계 맺기를 하게 될 ‘컵짜이 라이라이(매우 감사합니다)’ 중얼거리면서 말이다.






 





  올 해는 나에게 각별하다. 지속가능한 사회로 가는 길목에서 우리 활동가들은 지속가능한 자신의 삶을 돌아볼 겨를이 없는 게 현실이다. 호기심 반, 사명감 반으로 들어온 시민운동 판에서 ‘전략’과 ‘전술’과 같은 낯선 단어들에 투덜거리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돌아보니 어느덧 10년이 되어간다. 10년 전쯤, 건설회사에서 일하던 나는 IMF의 칼날 같은 시간 속에서 동료들이 하루아침에 자리를 잃는 것을 지켜보기를 반복하면서 내 안에 있던 시민운동의 꿈은 커져만 갔고, 급기야 새로운 길을 선택하게 되었다. 옛 어르신들의 인사가 ‘밥 먹었니?’ 였다면 나의 회사생활동안 동료들의 인사는 ‘주식 올랐어?’ 였다. 그런데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게 행복하다고 느껴지는 일 중의 하나는 ‘요즘 재미있어?’라는 인사를 나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놈의 재미 때문인지 연차가 쌓여갈수록 활동가 개인의 삶의 어느 부분은 피폐하다. 시간, 몸, 돈을 다른 방식의 ‘재미’와 맞바꾸기를 지속하다보면 나를 둘러싼 환경은 그다지 지속가능하지 않은 상태가 되기도 한다. 개인적 차원의 지속가능한 운동과 미래에 대한 회의가 생기기도 하는 것이다. (물론 모두의 이야기는 아니다. 요즘 많은 현명한 활동가들은 개인적, 조직적, 사회적 삶을 슬기롭게 설계해가기도 한다.^^) 그리고 개인적인 운동의 지속가능성은 온전히 개인의 몫으로 남아있다. 나의 작은 꿈은 후원하는 운동가가 되는 것이다. 척박한 환경에서 활동을 해오면서 40대가 되면 볼런티어로서 후원하는 운동가가 되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나는 나의 작은 꿈을 실현하기 위해 학업을 결심했다. 이것이 개인적인 운동을 지속가능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개인적 소견에서 말이다. 어쨌든 이런 선택이 이번 여행에 동기가 되었다.





지구온난화와 장거리 여행


  라오스의 작은 공항. 영란이 마중 나와 있었다. 여기와 한 번도 자르지 않았다는 긴 생머리에 가벼운 옷차림, 좀 더 말라보이지만 여전히 해맑은 웃음으로 반겨주었다. 평소 찬찬하고 반박자 느린 듯 하면서도명확하고 예리한 영란의 이성과 따뜻한 마음은 여전히 살아있다. 평온해 보인다. 그리고 라오스도 덩달아 평온해 보인다. 그 평온함이 반갑다. 


  뚝뚝이를 타고 라오스의 수도, 위엔짱2)의 시내를 향해 달린다. 아무리 달려도 중심가로 보이는 곳이 없다. 그저 그런 소박한 도시를 지나던 즈음 영란이 귀뜸해 준다. 위엔짱의 중심부라고. 뜻하지 않은 충격이다. 아시아 시민사회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동남아시아에 위치한 제법 여러 곳을 돌아보았지만 이처럼 소박한 수도는 처음이다. 여행자들은 한손에 지도를 들고 터벅터벅 걷기 기술로 사나흘이면 이 도시를 둘러볼 수 있고, 조급하거나 시간이 부족한 사람들은 자전거를 빌리거나 뚝뚝이를 이용하기도 한다.


  사실 여행을 결정하기까지는 마음이 복잡했었다. 환경운동가로서 오랜만에 얻은 휴가를, 지구온난화의 원인이 되는 이산화탄소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교통수단을 이용해야 하는 장거리 여행으로 보낸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3). 때마침 국제유가폭등으로 항공료도 급상승 중이었다. 낯선 문화를 만나는 여행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나이지만 친구의 초대와 약속이 없었더라면 진작 포기했을지 모르겠다. 책임여행가들의 충고대로 이번 여행을 꼭 가야하는 이유에 대해 되짚어 보게 되었다. 결국 다른 많은 이유를 덮어두고 이번 여행은 나에게 스스로의 ‘선물’인 만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에 의미를 두기로 하였다. 대신 여행을 준비하는 동안 그리고 여행을 하는 동안 ‘지속가능하고 책임 있는 여행’에 대한 물음을 계속하기로 다짐하였다.  
                                

  


  비행기로 도착한 위엔짱(비엔티엔)을 거쳐, 라오스의 대표적인 문화도시이고 도시자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도시인 루앙파방(루앙프라방)까지 10시간, 루앙파방에서 며칠 머문 후 친구가 봉사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싸이나부리까지 다시 10시간(평소 4시간 거리였지만 앞선 차가 폭우로 생긴 산중턱의 웅덩이에 빠져나오는데 꼬박 6시간을 기다려야 했음), 도시에서 도시로 도시에서 다시 작은 마을로, 비행기대신 버스를 선택한 나는 이틀 동안 꼬박 20시간 남짓을 달렸나 보다. 처음에는 10시간의 버스여행과 1시간의 비행기여행 중, 현지에서의 탄소발자국4)을 줄이고 경비도 절약해보자는 생각에 피곤함을 감수하기로 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라오스의 10시간은 우리나라 고속도로에서의 10시간과는 달랐다. 구불구불 자연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정직한 길을 따라 산 아래 걸터앉은 구름 속 마을길 속으로, 넉넉하고 참을성 많은 라오스 인들의 평온함을 친구삼아 말 그대로 ‘산 넘고 강 건너’ 는 동안 아름다운 풍광은 오롯이 나의 것이 되어주었다. 10시간은 버려지는 시간이 아니라 여행자들을 위한 훌륭한 선물이었던 것이다. 사실 한국에서는 KTX가 개통되면서 서울에서 부산을 3시간이면 통과할 수 있는 일일 생활권 시대에 익숙해져 있다. 시간이 곧 돈인 시대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라오스 인들이 장을 보러가거나 친인척 집을 방문할 때면 언제든 누리게 되는 ‘산 넘고 강 건너 구름 속 마을로 서서히 잦아드는 여행’ 상품을 이용하는 것은 벼르고 별러야 하는 일이 되어버렸다. (계속)


 


*글: 장미정((사)환경교육센터, 서울대 환경교육 전공)


 


1) 한국국제협력단, Korea International Cooperation Agency 


2) 랑스의 식민지였던 라오스의 지명은 프랑스어로 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영어로 읽어서 전혀 다른 이름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기도 한다. 현지인들은 영어식 표현을 좋아하지 않아 본문에서도 현지식 발음으로 기록한다.


3) 국철도기술연구원의 2005년 자료에 따르면, 1t의 화물의 1㎞ 수송 기준 수송수단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자동차 178g, 항공기 1,483g, 선박 40g, 철도 21g라고 한다. 다소 호들갑스럽다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기후변화에 관한 과학적 자료들을 보면 볼수록, 얼마 남지 않은 우리 공동의 미래에 대한 위협이 심각하게 받아들여진다. 우리세대가 지금 이 긴급한 시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에 대해 미래세대에 절대로 정당화될 수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에 십분 동감한다.


4) 탄소발자국 : 사람의 활동 혹은 어떤 상품을 생산, 소비하는데 직간접적으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의 총량을 말한다. (예. 500ml 생수 한 병을 생산-유통-소비-폐기하는 동안에는 약 10.6g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하며, 1.8ml 생수 한 병의 경우에는 24.7g의 이산화탄사고 발생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