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연재_세상읽기] 새 기술 윤리: 나노, 에너지, 로봇
















[세상읽기] 새 기술 윤리: 나노, 에너지, 로봇 / 송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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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상용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로회원

유네스코(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에 태어났다. 애초에는 유네코(교육문화)였는데 초대 사무총장 줄리언 헉슬리의 주장을 받아들여 과학(S)을 더해 유네스코가 되었다. 초대 자연과학부장 조지프 니덤은 헉슬리와 함께 세계적인 생물학자였고 왕립학회(RS)와 영국아카데미(BA) 회원을 겸한 과학·인문학의 석학이었다. 유네스코는 창립 이래 과학의 인간적·사회적 의미를 탐구·발전시키는 일에 앞장섰다.

20세기 후반 생명공학의 눈부신 성과가 심각한 윤리문제를 일으키자 유네스코는 1993년 생명윤리위원회(IBC)를 만들었다. 인간게놈, 유전자료, 생명윤리에 관한 세 선언을 발표한 것이 그 성과다. 5년 뒤 유네스코는 세계과학기술윤리위원회(COMEST)를 창설했다. 그동안 코메스트는 정보기술·담수·외계 윤리를 다루었고, 현재는 환경윤리와 과학자 윤리강령에 집중하면서 새 기술의 윤리 가운데 나노기술을 공략하고 있다. 두 위원회에는 한국에서 세 사람이 이미 위원을 지냈고, 맹광호·김환석 위원이 참여하고 있다.

생명공학 다음으로 떠오른 나노기술은 21세기의 혁명적 기술로 각광받고 있으나 과장이 많고 잠재적 위험에 대한 우려도 높다. 일찍이 환경단체 그린피스가 비판적인 보고서를 낸 바도 있다. 우리나라는 나노기술 분야의 논문과 특허 수에서 세계 4위를 차지하고 있으니 나노윤리 연구 필요도 시급하다. 한국과학기술평가기획원은 2003년부터 융합 나노기술과 나노소재 기술에 대한 기술영향평가를 했다. 여기에는 인문·사회과학자들이 참여했고 시민들의 의견도 참고했다. 재작년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은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와 더불어 나노윤리 국제 심포지엄을 열었다. 같은해 유네스코 아태지역사무소는 방콕에서 에너지 기술윤리 국제회의를 주관했는데, 에너지대안센터를 이끄는 이필렬 교수가 참가했다. 두 번째 회의는 지난해 세계철학대회의 일부로 서울에서 있었다.

지난해 말에는 로봇윤리헌장 제정위원회와 제어로봇시스템학회가 주관하고 지식경제부가 후원한 지능형 로봇윤리 워크숍이 열려 눈길을 끌었다. 한국은 로봇 분야에서도 미국·일본과 함께 선두 주자의 한 나라다. 워크숍은 과학기술에 조예가 깊은 작가 복거일 초청강연 ‘로봇의 진화’로 시작했다. 로봇윤리라는 말은 2004년 국제워크숍에서 처음 나왔다고 한다. 한국은 이듬해 로봇산업 정책포럼에서 로봇윤리 작업반을 만들었고, 1년 만에 로봇윤리헌장 초안을 기초했다. 로봇윤리를 기술자들이 손수 만들었고 인문학자들의 도움을 청했을 뿐 아니라 이런 작업을 정부가 지원한 것은 의의가 크다.

이번 워크숍에서는 신학자 김흡영 교수와 철학자 이중원·고인석 교수가 발표했다. 로봇은 단순한 기계인가, 새로운 종인가? 로봇윤리는 로봇 자체의 윤리인가, 로봇 사용자의 윤리인가? 로봇을 윤리적 특성을 지닌 존재로 본다면 로봇윤리의 영역은 크게 확대된다. 로봇이 인간의 도구이며 생명체가 아니라 해도 많은 복잡한 윤리적인 문제들이 있다. 로봇윤리와도 관계가 깊지만 뇌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외국에서 활기를 띠고 있는 뇌윤리에 대한 관심도 높일 필요가 있다.

99년 부다페스트에서 있었던 세계과학회의는 과학기술윤리의 중요성이 강조된 역사적인 계기였다. 올 11월에는 이 회의 열 돌을 기념하는 ‘세계과학포럼’이 헝가리 과학아카데미와 유네스코, 국제과학협의회(ICSU)의 공동주최로 부다페스트에서 열린다. 정부는 연구윤리의 경우처럼 생명윤리를 포함한 과학기술윤리 연구의 활성화를 적극 돕고 잘 준비된 대규모 대표단을 보내야 할 것이다.

 


송상용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로회원, (사)환경교육센터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