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세상읽기] 토종 과학자 석주명 _ 송상용
















[세상읽기] 토종 과학자 석주명 / 송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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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상용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로회원

뮌헨의 독일박물관에는 ‘명예의 방’(Ehrensaal)이 있다. 독일을 빛낸 과학자들의 업적을 보여주는 곳이다. 거기에는 코페르니쿠스도 있다. 이 유명한 천문학자는 독일과 폴란드의 국경도시 토룬에서 태어났지만 오늘날 과학사학자들은 그를 폴란드 사람으로 분류한다. 이번주말 문을 여는 국립과천과학관에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이 새로 단장해 선을 보인다. 과학기술부가 2003년 시작한 명예의 전당에 헌정하는 과학기술자 선정은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이 맡고 있다. 올해 스물다섯 번째로 석주명이 뽑혔고 한 달 공고기간에 이의 제기가 없어 확정되었다.

석주명(1908∼50)은 평양에서 태어나 개성 송도고보를 거쳐 일본 가고시마 고등농업학교를 졸업하고 귀국해 함흥 영생고보와 모교에서 박물(생물)을 가르쳤다. 그는 교사로 일한 13년 동안 나비 연구에 전력투구했다. 그 전에 한국 나비 연구는 주로 외국 학자들이 했는데 많지 않은 표본을 근거로 신종으로 단정한 경우가 많았다. 석주명은 온나라를 누비며 75만 표본을 조사해 통계처리를 함으로써 그들의 잘못된 연구결과를 바로잡았다. 그의 연구로 한국 나비의 학명 가운데 같은 종이면서 이름이 다른 844개가 퇴출되었다. 초급대학밖에 못 다닌 식민지 교사가 제국대학 교수들의 연구를 격파하자 석주명은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됐다.

석주명의 연구 결과 한국 나비는 255종으로 정리되었다. 영국 왕립아시아학회 조선지부는 1940년 그의 영문 단행본 을 냈다. 석주명은 ‘나비박사’로 불리는 명사가 되었고, 자비·후원금 외에 미국·일본의 연구비를 받아 12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이 가운데 97편이 송도고보에 재직하던 11년 동안에 나왔다. 문만용 박사(전북대)는 석주명의 나비분류학을 심층 분석한 석사논문(1997)에서 석주명의 나비 연구를 세 단계로 나눈다. 석주명은 단순한 목록 작성에서 출발해 개체변이 연구로 넘어갔으며 분포 연구로 확대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문제 인식, 방법론 정립, 종합으로 요약된다. 이 과정에서 석주명이 분류학을 생물지리학으로 발전시켰을 뿐 아니라 인문학에 접목시킨 것은 주목할 만하다.

석주명은 연구대상을 철저히 ‘조선’의 나비로 한정했다. 외국 나비에 관한 논문도 썼지만 어디까지나 한국 나비를 알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조선적 생물학’도 성립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조선적 생물학은 자연과학을 넘어 인문학적 탐구까지 포괄하는 것이었다. 그는 조선왕조실록과 문집들에서 나비와 관련된 기사를 찾아내 분석한 역사학자였다. 그는 19세기에 평생 나비를 그린 남계우를 연구해 ‘조선 사람의 곤충학’으로 소개했다. 더욱이 나비의 우리말 이름 짓기에 열중하면서 빠져 들어간 석주명의 방언 연구는 국어학계의 평가를 받을 정도였다. 광복 직전까지 경성제대 부설 생약연구소 제주시험장에서 2년 근무하면서 이룬 제주에 관한 생물·언어·인구·역사학적인 연구는 석주명을 ‘제주학’의 선구자로 만들었다.

인도 물리학자 찬드라세카라 라만은 국내에서 한 연구로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노벨 과학상을 받았다. 석주명은 일본 유학을 했지만 진짜 토종 과학자였다. 그의 ‘조선적 생물학’은 1930년대 조선학 운동의 맥락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며 국학 연구자로서의 석주명을 굳혔다. 20년이란 짧은 기간에 석주명이 한 작업은 오늘날 과학의 토착화를 위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석주명이 한국전쟁에서 42살 한창때 삶을 마감한 것은 애통한 일이다. 2010년 석주명의 60주기에는 그의 흉상이 있는 서귀포에서 큰 학술잔치가 열리기를 바란다.

 


*송상용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로회원/ (사)환경교육센터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