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례/세상읽기] 누가 윤리를 두려워하나 _ 송상용

눈부신 발전을 해 온 현대 과학기술은 20세기 중반에 이르러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인체실험, 원자폭탄, 환경재난 등이 그 대표적인 문제점들이다. 세기말이 가까워 오면서 과학기술이 인류의 멸망을 가져올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하게 되었다. 과학기술 윤리가 갑자기 문제된 배경이었다. 창립 때부터 과학의 사회적 충격에 깊은 관심을 보여 온 유네스코는 1990년대에 국제생명윤리위원회와 코메스트(세계과학기술윤리위원회)를 잇달아 만들어 문제 해결에 나섰다. 1999년 유네스코와 익수(ICSU·국제과학협의회)의 공동주최로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세계과학회의(WCS)는 과학기술사의 전환점이었다.

 

여기서 채택된 ‘과학과 과학지식의 응용에 관한 선언’과 ‘과학의제’는 과학자들의 신랄한 자기반성을 통해 과학자의 책임과 과학윤리를 강조했다는 점에서 획기적이었다. 이 회의에는 한국도 과학기술부 장관을 비롯한 대표단이 참석했고 정부가 선언에 서명했다. 유네스코는 부다페스트회의의 후속작업을 회원국들에 권고했는데 한국은 가장 모범적으로 호응한 나라의 하나였다. 60년대 이후 과학기술을 경제 건설을 위한 수단으로만 보고 정신없이 달려온 한국 정부가 윤리에 적극 관심을 보인 것은 정말 다행스런 일이었다. 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이 된 한국은 선진국으로서 자격을 갖추어야 할 현실적인 압력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복지부가 ‘재조합 유전자 연구지침’을 서둘러 만든 것도 그 보기라 할 수 있다.

 

후속작업은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와 과학기술정책연구소가 맡아 했고 과학기술활동 모니터링 보고서와 단행본 을 펴내는 성과를 올렸다. 이 작업의 일환으로 2002년 과기부는 한국과학기술한림원에 ‘과학기술인 헌장 연구’ 과제를 맡겼다. 17명의 과학기술자와 인문·사회과학자들로 이루어진 연구원들이 반년 걸려 만든 보고서가 나왔다. 이것을 바탕으로 과학기술자 헌장을 만들었어야 옳았다. 그러나 정부는 더이상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보고서는 까맣게 잊혀졌다.

 

2004년 황우석씨 등의 줄기세포 논문이 에 발표되면서 한국 사회는 미치기 시작했다. 나는 한국생명윤리학회를 대표해 윤리적 문제가 있는 논문을 실은 데 항의하는 편지를 편집인에게 보냈다. 석 달 뒤 나온 편지에는 “생명윤리학자들이 기술의 발전을 방해하고 있다”는 황우석씨의 엉뚱한 주장이 붙어 있었다. 언론이 부추긴 탓도 있지만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권 거의가 윤리가 과학의 발목을 잡는다는 잘못된 생각을 갖게 되었다. 한국과학문화재단은 유네스코 한위와 한국생명윤리학회의 윤리행사 지원을 모두 취소했다. 이런 와중에 청와대의 권고로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이하 과총)가 ‘과학기술인 헌장’을 만들었다. 정부가 윤리에 관심이 있음을 보여 주려는 제스처였으리라. 한 쪽밖에 안 되는 ‘과학기술인 헌장’은 ‘세계 과학의 날’에 선포되었는데 황우석씨가 낭독하는 희극이 벌어졌다.

 

황우석씨가 몰락하자 정부는 연구윤리 지침 만드는 일을 서둘렀다. 유네스코, 과총, 한림원이 힘을 합해 제대로 된 ‘과학기술자 윤리강령’을 만들자는 내 제의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과총이 거의 단독으로 졸속 윤리강령을 만들어 선포했을 뿐이다. 지난해 봄 유네스코 한위는 올해 서울에 코메스트 정규회의를 유치하자는 제안을 했으나 과기부는 정부가 윤리를 진흥하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지원을 거부했다. 기막힌 일이었다. 50년 전 히트한 연극 가 생각났다. 이명박 정부도 과학기술윤리에는 관심이 없다. 오늘 서울에서 막을 여는 세계철학대회에 이 문제를 던져 볼까 한다.

 


송상용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로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