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세상읽기] 청계천과 대운하 _ 송상용

청계천이 다시 열리던 날 서울 시민들은 모두 기뻐했다. 청계천 복원이 오늘의 이명박 대통령을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진짜 생태 복원이었다면 대단한 업적임이 틀림없다. 알고 보면 그것은 ‘콘크리트로 만든 긴 어항’(환경노래꾼 이기영 교수)이다. 전기로 물을 돌리는 데 하루 천만원 이상 써야 하니 오히려 반환경적이다. ‘환경영웅 이명박’()은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는다. 대운하도 대통령이 유럽 여행길에 라인-마인-도나우 운하에서 깊은 인상을 받고 떠올린 아이디어라고 한다. 토목과 경제를 재빨리 계산했겠지만 환경을 고려한 흔적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대선 공약으로 매력이 있다 하더라도 사전에 철저히 손익과 영향을 따져 보아야 했다.

 

개발과 환경이 대결한 큰 토목사업들을 보자. 동강은 환경이 이겼고 새만금은 개발이 이겼다. 정치적인 동기로 시작한 새만금 간척에 환경 쪽은 초기에 강력히 대처하지 못했다. 수질오염이 반대 이유였는데 갯벌의 가치는 뒤늦게 알았던 것이다. 일단 시작한 공사를 막는다는 것은 어려운 법이다. 삼보일배까지 나온 처절한 저항이었으나 여야가 없는 개발주의에 참패하고 말았다. 이번에는 달랐다. 온 나라의 교수들이 들고일어났다. 시민단체, 학회, 종교인, 문인들이 한목소리를 냈다. 대운하는 초반부터 힘을 못 썼다.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던 지난 4월9일 새벽에 투표하고 환경사회학회 회원, 서울대 환경대학원 학생들과 대운하 물길 탐사에 나섰다. 벚꽃이 활짝 핀 문경새재는 황홀했다. 한강 상류의 깊이는 1미터도 안 되는 데가 많았다. 암반을 폭파해 운하를 만든다는 것은 미친 짓임을 금방 알 수 있었다. 강강수월래단(48일), 생명평화순례(103일), 녹색순례, 침묵의 걷기가 이어졌다. 긴 말이 필요 없다. 강을 끼고 걸어 보면 안다.

 

이제는 주춤해졌지만 늘 그렇듯이 지자체, 투기꾼, 일부 주민들은 들떠 있었다. 제대로 된 토론은 거의 없었어도 반년 동안의 논의 결과 대운하는 안 된다는 사실상의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졌다. 그런데도 정부의 태도는 비겁하기 짝이 없다. 원자탄을 개발한 맨해튼 계획도 아닌데 정부는 온갖 꼼수를 써 가며 밀실에서 일을 벌이고 있다. 청계천 신화에 재미를 붙인 대통령의 애착은 알 만하다. 계속 말을 바꾸어 오던 그가 드디어 “국민이 싫어하면 하지 않는 쪽으로 결단을 내리겠다”는 데까지 왔다. 그러나 행동으로 옮길지는 아직도 미지수다. 대통령 주변에서 바른 소리가 높아져야 한다.

 

정부 안에서 환경부는 늘 야당이었다. 그런데 이 정부의 환경부 장관은 국토해양부 장관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15년 전 환경연합이 출발할 때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은 야당보다 더 적극적이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환경운동에서 큰 정치인이다. 환경운동연합 법률위원장을 지낸 그가 이제는 대운하와 연계해 서울을 수면도시로 만들겠다고 한다. 환경국정위원으로 열심이었던 김문수 지사, 안상수 의원도 입을 다물고 있다. 경선 때 대운하에 반대했던 박근혜 전 대표, 이한구 의원은 왜 침묵하는가?

 

베이징과 항저우를 잇는 4500리 징항 대운하는 7세기 초 건설되었다. 수나라가 망한 데는 양제의 고구려 침공 실패와 더불어 대운하 건설 후유증도 한몫했다고 한다. 대운하는 이명박 정부의 가장 큰 악수다. 위기를 만난 시이오(CEO)에게는 우물쭈물할 시간이 없다. 촛불 난국을 돌파하려면 더 늦기 전에 깨끗하게 포기선언을 해야 한다.

 


송상용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로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