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서평] "솔로몬의 반지"_ Happy Toge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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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 Together! 생명의 손을 잡고 걷다
-『솔로몬의 반지』서평



솔로몬 왕에게는 아주 특별한 반지가 있었다고 한다. 손가락에 끼면 네발짐승과 날짐승은 물론이고 물고기, 벌레와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마법의 반지였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마법의 반지를 끼고 솔로몬 왕은 동물들에게서 세상의 많은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이야깃거리를 물고 오는 동물은 많고도 많았지만 솔로몬 왕은 나이팅게일(nightingale, 학명 Luscinia megarhynchos, 참새목 딱새과의 소형 조류)을 특히 아꼈다. 나이팅게일이 여기저기 포르르 날아다니며 부지런히 이야기를 주워 날랐던 까닭이다.
그러나 솔로몬 왕은 나이팅게일이 전해 준 이야기 때문에 마법의 반지를 버리고 말았다. 솔로몬의 아내 999명 가운데 한 여인이 젊은 사내와 사랑은 속삭인다는 사실을 나이팅게일이 밀고하자 솔로몬 왕이 대노하여 반지를 집어던져 버렸기 때문이다.

마법의 반지
동물과 대화를 나눌 수 있게 해주는 반지라니! 한 번쯤 손가락에 끼어보고 싶을 만하건만 마법의 반지가 부럽지 않다고 말하는 이가 있다. 바로 콘라트 로렌츠(Konrad Z. Lorenz)이다.
콘라트 로렌츠라는 이름 뒤에는 ‘비교행동학의 창시자’,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1903년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 빈대학에서 의학과 생물학을 전공, 두 전공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로렌츠는 일생을 살아있는 동물과 함께 했다.
비교행동학의 창시자답게 로렌츠의 집과 연구실은 ‘노아의 방주’와도 같아 그를 따르는 온갖 동물들도 가득 차 있었다고 한다. 로렌츠는 이 동물과의 교감, 관찰과 경험, 연구의 결과를 논문과 저서, 흥미로운 에세이로 남겼다. 이 책 『솔로몬의 반지』는 로렌츠가 남긴 대중 과학 서적 『이른바 악(惡)』, 『거울의 이면』,『인간이 개를 만나다』, 『적응을 위한 지식의 기능』, 『야생거위와 보낸 일년』 중 대표작이다.

살아있는 존재는 마술이나 요술 없이도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 즉 진실의 이야기를 들려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중략)… 동물이 우리와 접촉을 가질 용의가 있는 한 우리가 동물에게 말을 거는 것은 가능하다.
-『솔로몬의 반지』, 사이언스북스, 124쪽  

콘라트 로렌츠는 『솔로몬의 반지』를 ‘동물에 대한 짜증(제1장)’으로 시작하고 있다. 여기서 로렌츠는 “처음부터 동물과의 생활에 대해 어두운 면을 이야기”하는 까닭에 대해 “어두운 면을 감내하고 희생하는 마음의 크기야말로 동물에 대한 사랑의 크기를 나타내기 때문”이라고 적고 있다. 사실 동물과의 우정이 로렌츠가 사생활이며 가정생활, 연구 등을 꾸려나가는 데 항상 유익했던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솔로몬의 반지』 곳곳에 나와 있듯이, 어떤 회색기러기는 침실에서 밤을 새우고 아침이 되어서야 창문으로 나갔고, 앵무새의 일종인 카카두는 빨랫줄에 널어놓은 빨래에서 단추를 모조리 떼버리는 데 사력을 다했으며, 노래새는 가구와 커튼을 망가뜨리기 일쑤였고, 개 티토는 사람을 가리지 않고 꼬리쳤을 뿐 아니라 진창만 보면 달려들어가 뒹굴었으며, 로렌츠를 암컷으로 오인한 수컷 갈가마귀는 그의 입과 귀에 갈가마귀 침이 가득 섞인 벌레를 틈만 나면 밀어넣었다.

동물과 함께 걷다
동물과의 교감이나 우정, 연대는 동물생태학이나 비교행동학을 전공으로 삼고 있는 이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특성이다. 이런 특성을 잘 보여주는 책이 바로 『유인원과의 산책』이다. 『유인원과의 산책』은 제인 구달, 다이안 포시, 비루테 고리카스 등 유인원을 연구하는 여성과학자 3인에 대한 이야기인데 서문에서 저자인 사이 몽고메리는 이렇게 쓰고 있다.

이들 모두는 유인원에 대해 열정적이었다. 다이안이 살해되기 전에 세 여인을 한꺼번에 뉴욕의 한 심포지엄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그때 그들이 서로에게 어떻게 해서 자신의 유인원이 ‘가장 인간과 닮았는지’ 주장하며 상대를 앞지르려고 기를 쓰는 것을 보고 다소 당혹스러웠다. …(중략)… 그녀들을 보면서 나는 “우리 아빠가 너네 아빠 이겨.”라는 식으로 우기는 아이들, 혹은 서로 자기 손주가 더 잘났노라고 극구 앞세우는 할머니들을 떠올렸다.
-『유인원과의 산책』, 다빈치, 17~18쪽

동물의 행동을 전공하는 일부 과학자들은 연구자는 자신의 연구 주제에 감정적으로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실제로 자신의 연구 대상(즉, 동물)과 깊은 관계를 맺은 연구자들은 거의 예외 없이 호된 시련(다이안 포시의 죽음과 같은)을 겪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시련은 연구자들의 경험과 성취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 핵심이 되었다. 이것이 바로 로렌츠가 이야기한 “동물과의 생활에서 어두운 면”과  “어두운 면을 감내하고 희생하는 마음의 크기”의 정체다. 그리고 행복이 늘 유쾌한 상태만은 아니듯, 사랑은 늘 기쁨만은 아니며 진정한 사랑이란 기꺼이 불편함을 감수하고자 하는 마음과 태도에 달려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여기서 혹자는 동물의 행동을 연구하는 연구자들에게 이렇게 묻는다. 사람도 살기 힘든 세상, 동물 연구는 왜 합니까?

잠시 침묵하다가 내가 다시 물었다. 동물 연구는 왜 하는 겁니까? 너무 단도직입적 질문이었나 싶었는데 단도직입적 대답이 돌아왔다. “사람을 알기 위해서죠…. 진화론의 입장에서 보자면 모든 동물에게 있는 것이 인간에게도 모두 있기 때문입니다.” 하고. 그는 우리가 생물시간에 배웠던 유명한 명제 “개체의 발생은 계통의 발생을 반복한다.”라는 이야기를 꺼내며 우리에게 있는 모든 것이 동물에게 있다는 말을 했다. 순간 내가 읽었던 동물 연구에 대한 책이 아아, 그런 의미로 읽힐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겨레」, 인문의 창으로 본 과학의 풍경, ‘인간, 동물 그리고 진화’ 중에서, 2004년 12월 5일자

콘라트 로렌츠 역시 인류에 대해 관심과 애정을 보낸다. 인류의 미래와 안녕, 행복에 대한 로렌츠의 근심은 『현대 문명이 범한 여덟 가지 죄악』에 잘 드러나 있다. 이 책에서 로렌츠는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를 향해 생명 공간이 황폐화되면 자기 자신과 경쟁하게 되고 그로 인해 감정이 냉각되며 유전적으로 쇠퇴하게 된다고 경고한다. 그러면서 로렌츠는 이와 같은 일련의 과정을 겪지 않게 위해서는 각각의 종이 가진 생명 공간을 존중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한마디로 “Happy Together!”하자는 것이다.

고인의 무덤에 꽃을 놓듯이
어찌 보면 인간이 인간이라는 종을 제외한 생명체에게 보이는 관심은 “알지 못하는 고인의 무덤에 꽃을 놓은 것”과 같을지도 모른다. “받는 사람은 알지도 못하고 관심을 가지지도 않”는, 생각할수록 서운하고 손해 보는 듯한 무엇 말이다. 그런데도 우리가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에게 애정을 가져야 하는 까닭은 반드시 그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함께 살아가던 그들이 사라지면 우리에겐 아무것도 남지 않기 때문이다.    

그날 밤 어두워지는 풀섶으로 들어가는 새(에뮤-필자 주)들을 그만 놓쳐버리고 말았다. 나는 규칙을 깨고 그들과 함께 있기 위해 그들 뒤를 필사적으로 쫓아갔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비는 점차 우박으로 바뀌었다. 나는 비에 젖고 우박에 얻어맞은 참담한 기분이 되어 지게라 수풀에 몸을 맡긴 채 펑펑 울었다. 그때 나는 내가 원했던 것이 단지 자료만이 아니었음을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그저 그들과 함께 있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떠나가고 없었다.
…(중략)…
“너희들이 내게 준 것에 결코 다 보답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내가 느끼는 이 고마움을 너희들이 알아주기 바란다.”
물론 이것은 알지 못하는 고인의 무덤에 꽃을 놓는 것과 같은 표현일 것이다. 받는 사람은 알지도 못하고 관심을 가지지도 않는…. 그러나 우리는 아무도 듣지 않는다 해도 우리의 기도문을 읊조린다.
-『유인원과의 산책』, 다빈치, 16~17쪽

※참고서적
솔로몬의 반지, 콘라트 로렌츠, 사이언스북스
유인원과의 산책, 사이 몽고메리, 다빈치
현대 문명이 범한 여덟 가지 죄악, 콘라트 로렌츠,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 글: 오윤정 님(출판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