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서평] "지구인 화성인 우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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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에코와 『지구인 화성인 우주인』
- 그때 이후로 사람들이 모두 행복하게 살았다고 이야기할 수 없어서 미안합니다.


지식인에게 글쓰기는 직무이자 의무이다. 자신의 사상과 연구 성과를 알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언어로 표현해야 하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읽기 좋고 이해하기 좋으며 진솔한 글은 미덕 중의 미덕이다.
그런 면에서 움베르토 에코는 미덕을 보여주는 지식인의 전형이다. 에코는 자신의 연구 결과를 논문으로, 전문 서적으로, 소설로, 칼럼으로 다양하게 표출해낸다. 그런 에코가 어린이를 위한 단편동화집 『지구인 화성인 우주인』을 펴냈다. 이 책에는 표제작인 「지구인 화성인 우주인」 외에 「폭탄과 장군」,「뉴 행성의 난쟁이들」 등 두 편의 동화가 더 실려 있다.

집나간 원자폭탄과 세 우주인


「폭탄과 장군」의 주인공은 원자 아토모다. 원자폭탄 속에 갇혀 있는 아토모는 “다른 원자들과 함께 폭탄이 터지고 원자들이 부서져 모든 것을 깨뜨려 버릴 날은 기다릴 수밖에 없는” 신세다. 아토모는 자기 때문에 일어날 무서운 일을 생각하면서 슬퍼하다 원자폭탄을 만든 나쁜 장군에게 맞서 싸우기로 결심하고, 어느 날 소리 없이 폭탄에서 빠져나와 지하실에 숨는다.
「지구인 화성인 우주인」은 우주를 탐험하러 떠난 미국, 러시아, 중국 출신의 우주인들이 화성에 도착한 뒤 벌어지는 이야기다. 처음에 세 우주인은 자국의 이익을 대변하고 서로의 이질성에 적대감을 갖는다. 그러다 외로운 화성 밤하늘 바라보며 엄마를 부르며 동질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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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되었습니다. 주위는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고, 지구는 아주 멀리서 별처럼 반짝였습니다. 우주인은 슬프고 외로웠습니다. 그때 미국사람이 어둠 속에서 엄마를 불렀습니다.
“마미.”
러시아 사람은 “마마.”하고 불렀습니다.
중국 사람은 “마~마.”하고 불렀습니다.

***

아침을 기다리는 동안 세 우주인은 서로를 많이 이해하게 되었고 작은 소동을 거치면서, 지구인과 아주 다르게 생긴 화성인에게도 우정을 느끼게 된다.

난 내가 사는 곳이 더 좋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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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힘 있는 황제가 지구에 살았습니다. 혹시 지금도 있을지 모릅니다. 황제는 새로운 땅을 발견하고 싶어 했습니다.
“내 배들이 금은이 풍부하고 드넓은 평야가 있는 새로운 대륙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그래서 우리 문명을 전해주지 못한다면, 내가 무슨 황제란 말이냐?”
황제가 이렇게 외치자 신하들이 말했습니다.
“이제 지구에서는 발견할 땅이 전혀 없습니다. 지도를 보십시오!”
“저 아래 아주 조그마한 섬은 무엇이냐?”
황제가 안달이 나서 묻자 신하들이 대답했습니다.
“지도에 표시되어 있다는 것은 이미 발견했다는 뜻입니다. 아마 거기는 벌써 관광지가 되었을 겁니다. 그리고 요즈음 사람들은 섬이나 대륙을 발견하러 바다로 가지 않습니다. 우주선을 타고 우주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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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행성의 난쟁이들」은 본격적으로 환경을 주제로 하는 동화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힘 있는 황제의 명령으로 새 땅(식민지)을 찾아 우주로 간 우주탐험가다. 그는 오랫동안 우주 공간을 돌아다니다 행성을 하나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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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행성이 하나 있었는데, 파란 하늘에는 하얀 양떼구름이 떠 있고 푸른 숲과 계속은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계곡에는 온갖 귀여운 동물들이 뛰놀았고, 약간 우스꽝스럽지만 나름대로 귀여운 아주 조그만 사람들이 나무를 보살피고, 새들에게 모이를 주고, 잔디를 깎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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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탐험가는 행성의 황제를 찾아가서 “우리 황제의 이름으로 내가 이 행성을 지배하고, 여러분에게 지구 문명을 전해 주겠”다고 말한다.
“문명이란 지구인들이 발명한 온갖 놀라운 것이랍니다. 우리 황제는 그것을 당신들에게 공짜로 주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주탐험가가 내민 망원경으로 지구의 문명은 본 행성의 난쟁이들은 의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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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난쟁이가 말했습니다.
“아무것도 안 보여. 연기만 가득한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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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난쟁이들은 유조선에 오염된 바다, 쓰레기로 뒤덮인 들판, 교통체증이 극심한 도로 따위에 대해 어린아이처럼 묻는다. 난쟁이들이 지구의 문명에 대해 찬사를 퍼부을 것이라 예상하고 잔뜩 기대에 차 있던 우주탐험가는 말문이 막힌다. 우물쭈물 대답하지만 그 대답은 엉성하게 우스울 따름이다. 그러자 난쟁이들이 제안한다.
“우리는 들판과 정원을 가꾸고, 나무를 심거나 병든 노인들을 보살피는 일을 아주 잘합니다. 우리가 저 비닐 봉투와 깡통을 모두 모으고 지구 계곡을 청소하겠어요. … 지구인들에게 자동차를 타지 않고 산책하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말해주겠어요.”
우주탐험가는 난쟁이들의 제안을 가지고 지구로 귀환한다.


진지하게 단호하게 비꼬라

 

『지구인 화성인 우주인』을 쓴 움베르토 에코는 1932년 이탈리아의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났다. 에코는 세계에서 가장 저명한 기호학자이자 볼로냐대학의 교수이며 뛰어난 철학자, 역사학자, 미학자이기도 하다. 또한 에코는 아퀴나스의 철학부터 컴퓨터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 걸쳐 공부한 ‘공부광’이고 책을 많이 읽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에코는 ‘언어의 천재’라고도 불리는데 모국어인 이탈리아는 물론 영어, 프랑스어에 능통하고 독일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라틴어, 그리스어, 러시아어까지 해독한다.
에코는 연구 성과도 뛰어나서 『토마스 아퀴나스의 미학의 문제』, 『열린 작품』, 『기호학 이론』, 『대중의 슈퍼맨』, 『해석의 한계』, 『소설 속의 독자』, 『기호와 현대미술』, 『해석이란 무엇인가』, 『중세의 미와 예술』, 『무엇을 믿을 것인가』등 수십 권의 전문서를 펴냈다. 장편소설도 썼는데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 영화로도 제작된 바 있는 『장미의 이름』이다. 그 밖에 『푸코의 진자』, 『전날의 섬』을 썼고 칼럼집으로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등을 펴냈다.
그러나 움베르토 에코의 저서는 선뜻 손이 가지 않을 뿐 아니라 끝까지 읽기도 어렵다. 기호의 기능과 본성, 의미 작용과 표현, 의사소통과 관련된 다양한 체계를 연구하는 기호학(記號學, Semiotics) 자체가 학문과 학문이 만나는 복잡하고 난해한 분야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소설이나 칼럼 등 비이론서 또는 비전문서에 이르면 사정이 달라진다. 꼼꼼하고 철두철미하며 해박하고 지적인 면모는 여전하면서 유머와 진솔함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특히 살짝 비꼬면서 놀리기, 즉 패러디는 압권이다.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열린책들)』에서 밝힌 바대로, 에코는 패러디(parody)의 추종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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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디의 사명을 그런 것이다. 패러디는 과장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제대로 된 패러디는 나중에 다른 사람들이 웃거나 낯을 붉히지 않고 태연하고 단호하고 진지하게 행할 것을 미리 보여줄 뿐이다.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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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의 글을 읽다 보면 실소가 삐져나온다. 에코는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거나, 고귀한 존재인 양 명예나 명분을 늘어놓은 사람들에게 직격탄을 날린다. 「뉴 행성의 난쟁이들」에서도 그렇다. 지구의 문명이 얼마나 대단한지 보여주겠다며 망원경을 건넨 우주탐험가의 의도와는 달리 난쟁이들은 순진하지만 핵심을 찌르는 질문을 계속 날린다. 오염된 바다를 보고 “혹시 바다에 똥이 가득하다는 뜻인가요?”라고 묻는 식이다. 가식을 벗어버리고 “어, 임금님이 벌거벗었네.”하던 아이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에코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에코는 “우리 사람은 너나없이 보잘것없고, 그래서 인류는 보잘것없다.”고 주장한다. 보잘 것 없으니 자연 위에 서려고 하거나 지배하려 하려 들지 말자는 것이다. 에코는 자신의 이런 생각을 글로 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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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웃으면서 화를 낼 수 있을까? 악의나 잔혹함에 분개하는 것이라면 그럴 수 없지만, 어리석음에 분노하는 것이라면 그럴 수 있다. 데카르트가 말했던 것과는 반대로 세상 사람들이 가장 공평하게 나눠 가진 것은 양식이 아니라 어리석음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안에 있는 어리석음을 보지 못한다. 그래서 다른 것에는 쉽게 만족하지 않는 아주 까다로운 사람들조차도 자기 안의 어리석음을 없애는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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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대와 정복을 중단하라

대다수의 환경동화가 아름다운 이야기이며 희망으로 끝을 맺는다. 아마도 ‘미래의 희망’인 아이들에게 낙관주의를 심어주고, “우리는 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싶어서일 것이다. 그러나 에코는 이에 단호하게 거부한다. 확대와 정복을 계속 하는 한, 희망은 없다고 풍자한다. 그리고 우리 안의 어리석음과 거만을 들어내 버리지 않는다면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그래서 「뉴 행성의 난쟁이들」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이야기는 이렇게 끝났습니다. 그때 이후로 사람들이 모두 행복하게 살았다고 이야기할 수 없어서 미안합니다.”


※ 참고도서
『지구인 화성인 우주인(웅진주니어)』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열린책들)』
『움베르토 에코의 논문 잘 쓰는 방법(열린책들)』


※ 글 : 오윤정 님(출판기획자, 이화여대 환경교육 전공)